"커피 좋아하세요?"
"네?"
갑자기 내 눈 앞에 나타나 누군가가 커피를 들이밀었기에 나는 화들짝 놀랐다.
생글생글 웃는 모습이 예쁜..알바생인가보다. 메이드 복장을 하고 왼손과 오른손으로 다소곳이 받친 플라스틱 쟁반 위에는
커피가 담겨진 플라스틱 컵들이 놓여있다.
"커피 좋아하시나요?" 그녀가 재차 물었다.
"아..네..좋아하는데..지금 제가 돈이.." 나는 주머니를 뒤져 지갑을 손가락으로 끄집어 냈다.
"아니에요 저희 신장개업이구 행사중이라 돈은 받지 않습니다. 커피 무료로 시식 한번 해 보세요." 그녀는 웃으며 나에게 커피를 내밀었다.
"감사합니다. 맛있겠네요." 나는 커피를 받아들었다.
찰랑할 정도로 담겨진 커피컵 안에는 그냥 평범한 커피가 들어있었다. 다행이었다. 나는 아메리카노는 좋아하지 않기 때문에..
그녀는 내가 커피를 받고 감사하다는 인사를 전하자 휙 돌아 다른 사람들이 모인 곳으로 걸어가서 커피를 권하는 듯 했다.
'괜찮은데..' 나는 어느새 커피를 마시며 그녀의 뒷모습을 견적내고 있었다.
마셔보니 나름 괜찮다. 나쁘지 않았다. 카라멜 마끼아또 같았다. 아마 새로 연 까페라는걸 보니 저 건너편에 보이는 커피집인가보다.
테이크아웃 커피치고 맛도 진하니 나쁘지 않고..알바생도 괜찮아 보이고..그래 오늘부터는 저 커피집 간다 내가..
나는 보고 있던 신문과 가방을 챙겨서 버스를 타러 갔다.
그 다음 날 출근을 하며 그 커피집에 들렀다. 그 귀여운 알바생은 없었다. 뭐..주인장에게 '알바생 안나왔나봐요' 라고 처음 오자마자 말하기도
그렇고해서 그냥, 그냥 어제 먹은 그 카라멜 마끼아또를 하나 주문했다. 조금만 기다리시라는 주인의 말에 테이블에 앉아서 인테리어를 좀
구경하고 메뉴 좀 흘낏 보면서 혹시나 알바생 오지 않을까 싶어 입구 쪽으로 시선을 자꾸 보냈다.
"주문하신 마끼아또 나왔습니다"
나는 자리에서 드르륵 일어나 마끼아또를 들고 가게를 나왔다.
퇴근하며 다시 그 커피집에 들렀다. 아..있다. 그 알바생이 있다.
나는 마끼아또를 주문하고 또..좀 오래 앉아있고 싶어서 과자도 하나 사서 먹기로 했다.
주문한 마끼아또와 과자가 나와서 받으러 가다가 알바생과 눈이 마주쳤다.
자리에 앉아 과자를 우걱우걱 먹었다. 이게 코로 들어가는지 입으로 들어가는지..
"안녕하세요. 또 오셨네요." 그녀가 인사했다.
"읍..컥..네 안녕하세요.." 나는 과자와 커피가 목에 막혔다.
그녀가 생긋 웃으며 테이블을 청소하러 갔다. 그냥 그렇게 한마디 나눈 것만으로도 나는 기분이 너무 좋았다.
그리고 이튿날도, 그 다음날도. 나는 하루의 시작과 끝을 그 커피집에서 시작하게 되었다. 사실 알바생이 없는 오전에는 안가도 됐지만
혹시나..오전에 사정이 생겨서 나오는 날이 있으면, '저 여기 단골이에요!' 라고 말이라도 붙여볼 수 있지 않을까 싶어서.
하지만 뭐 기대와는 다르게 그녀는 오전에는 별로 나오지 않았고, 오후에는 매일 나와있었다. 쉬는 날이 없는게 더 신기했다.
그리고 그녀와 제법 친해져서 얘기도 많이 나누게 될 정도로 가까워졌다.
" 오늘은 일찍 퇴근하시네요?"
"네. 그쪽분 보려고 일찍 퇴근했어요."
" 푸하하. 저를 보려구요? 커피 먹으러 오시는게 아니구요?" 그녀가 웃는다.
" 정말이에요. 여기가 아니면 어디서 그쪽분을 봐요. 그러니까 여기에 맨날 오죠. "
"그럼 커피는 별로에요?"
" 커피맛도 좋고 그쪽분 보는 것도 좋고. 말 나온 김에 혹시 주말에 시간 되세요?"
"주말에...글쎄요..내일이 금요일이죠? 내일 제가 대답 드려도 괜찮겠어요?"
" 그럼요! 얼마든지..내일이야 금방 오잖아요?" 그녀와 약속을 90프로는 잡게 된 것 같아 기분이 너무 좋았다.
그러나 내 기대와 다르게 내일은 금방 오지 않았다. 잠에 들면서 이불을 덮는데 내일이 영원히 오지 않는거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었다.
나는 설레는 마음으로 잠에 들었다.
출근하며 가볍게 마끼아또를 한잔 하고, 일이 손에 붙는지 발에 붙는지도 모르게 일하다가 보니 퇴근시간이 되었다.
오늘은 한껏 멋있게 차려입었다. 휴. 그래..오늘은..일단 대답을..듣자구..대답만 듣는데도 차려입은 내가 바보 같아보였다.
커피집의 문을 딸랑 열고 들어가자 알바생은 안 보이고 주인 아저씨만 보였다.
" 안녕하세요. 늘 드시던 마끼아또랑 과자 맞죠?" 주인은 벌써 계산을 하고 있다.
" 아 안녕하세요. 아뇨 오늘은 커피만요. " 내가 두리번 거리며 대답했다.
" 하하 오늘은 저녁에 뭘 잡쉈나봐. 과자를 안 드시고. 알겠습니다 그럼 마끼아또 하나." 주인은 커피를 만들러 안으로 쏙 들어가버렸다.
자리에 앉아 기다리노라니 그녀가 테이블을 닦느라 안 보이는건지 화장실에 간건지 알 수가 없었다.
주인이 나의 커피를 만들어 오는 동안에도 그녀는 오지 않았다.
"자 주문하신 마끼아또.."
"저 사장님, 죄송한데요. 그..알바생..오늘 없나요?"
"예?" 영문을 모르겠다는 표정의 사장님.
"아뇨 여기 일하는 알바생 있잖아요. 여학생..학생인지 아닌지 아무튼.."
"무슨 말씀이신지 모르겠는데요?" 사장님이 되물었다. 나는 이 사람이 지금 날 약올리나 싶어 화가 났다.
"아니..사장님. 본인 가게에서 일하는 알바생이 있는지 없는지도 모르는게 말이 됩니까?"
"손님 죄송한데 뭔가 좀..알바생은..보시다시피 저희 커피집에 오시는 분도 몇분 안계세요. 손님이 그나마 제일 단골이구요."
" 나랑 여기 앉아있으면 매일 대화 나누던 그 알바생 말입니다! 어딨냐구요!"
"....손님. 정말 죄송한데..제가 이런 말씀 드려도 될까요." 주인 아저씨가 송구스럽다는 투로 말했다.
" 무슨 말씀을요"
" 손님은 여기 오셔서 매일 말도 없이 주문한 커피랑 과자만 드시고..빈 접시만 바라보시다가...가시고 그랬어요.
손님과 대화를 나눈 사람은 저뿐입니다. 그나마도 주문 할 때만요..누구와 이야기를 나눴다는건지 저는 알 수가 없네요.
오늘은 말씀을 많이 하시는 편이라 좀 놀랐습니다. 매일 '마끼아또랑 과자..' 하시고서 계산만 하시던 분이."
"내가...내가요? 무슨 말도 안되는 소리에요. 여기 알바생 있었잖아요. 왜 거짓말하세요. 그 여자가 시켰어요?" 나는 흥분해서 언성이 높아졌다.
"손님. 오늘 몸이 어디가 안 좋으시거나 하시면..제가 119에라도 연락을.."
그 뒤로 나는 내가 무엇을 했는지 잘 기억이 나지 않는다.
"....그래서 이게 피의자가 쓴 일기장과 진술서를 합쳐서 만든 보고서라구요?"
강 형사가 선배 형사에게 물었다. 선배형사는 종이컵에 담긴 커피를 홀짝이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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