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형씨는 오늘 재수 없는 날이 될 거야”
지하철을 탈 때부터 따라다니면서 돈 달라고 구걸하던 노인네는
내가 끝까지 돈을 주지 않자 더러운 소리를 내뱉었다.
그리고는 아무 일 없었다는 듯 시치미를 뚝 떼고
반대편에 앉아계신 아주머니에게 다가가 구걸을 해댔다.
‘미친 노인네가 망령이 들었나? 한 푼만 달라고 굽실거릴 때는 언제고’
거지 노인네의 이중적인 태도에 기분이 더러워졌다.
안 그래도 비오는 날씨라 기분이 울적했는데 기분이 더욱 다운됐다.
아침부터 지하철에서 구걸이나 하는 저런 거지한테 상소리를 듣다니.
나는 더러워진 기분을 조금이나마 드러내기 위해 노골적으로 거지 노인네를 노려보았다.
그 노인네는 내가 쳐다본다는 걸 아는지 모르는지
연신 불쌍한 표정과 몸짓을 지어가며 반대편 아주머니에게 구걸을 했다.
결국 그 아주머니는 노인네가 불쌍했는지 아니,
빨리 노인네를 쫓아버리고 싶었는지 그 노인네에게 꼬깃꼬깃 꾸겨진 천 원짜리를 건네줬다.
“아이고, 고맙습니다. 정말 고맙습니다.”
노인네는 구겨진 천 원짜리를 주머니에 쑤셔놓고는 연신 아주머니를 향해 머리를 조아렸다.
‘계산적이고 가식적인 노인네, 만약 아주머니가 돈을 주지 않았더라면 욕을 퍼부었겠지?’
내 생각을 듣기라도 한 걸까?
노인네가 갑자기 나를 쳐다봤다.
기분이 상했던 나는 두 눈을 부릅뜨며 노인네를 노려보았다.
그러자 노인네는 나와 아주머니를 비교라도 하는 듯 번갈아 쳐다보고는 이내
나를 내려다보며 씨익- 웃어보였다.
누런 치아가 도드라져 정말 더러워 보이는 웃음이었다.
저런 더러운 웃음이 또 있을까?
정말 역겹고 추잡스럽다.
노인네는 그렇게 웃어보이고는 다른 좌석에 앉아있는 사람들에게 다가갔다.
‘뭐 더 얻어먹을 거 없나?’
하는 표정을 지으며 어슬렁거리는 노인네의 모습이 마치 시궁창의 쥐새끼 같았다.
“저렇게 구걸하는 사람들이 자리만 잘 잡으면 일반 월급쟁이보다 수입이 괜찮다는데?”
“그러냐? 나도 나중에 장애인인척하면서 구걸이나 할까?”
내 맞은편에 서있던 학생 둘이 거지의 모습을 보며 중얼거렸다.
‘장애인인척하면서 구걸을 하면 월급쟁이보다 잘 번다고?’
대한민국에서 누구보다 바쁘고, 성실히 살아가는 월급쟁이 중 하나로서,
그 말을 듣고 기분이 좋을 리가 없었다.
‘ 같은 새끼들. 그래, 너희 같은 놈들이 나중에 저런 거지새끼가 되는 거야’
한심한 학생들에게 마음속으로나마 따끔하게 한마디해주었다.
- 이번 역은 이수, 이수역입니다.
‘벌써 내릴 역이 되었나?’
젠장, 망할 노인네와 같은 학생 덕분에 출근길동안 스트레스만 잔뜩 받았다.
그래서 그런지 앉아있었는데도 온몸이 뻐근하다.
나는 겨우겨우 피곤에 절어있는 몸뚱이를 일으켜 세우고는 문 앞으로 향했다.
내가 일어나자마자 거지노인네가 학생들을 밀치고는 재빨리
내가 있던 자리에 몸을 던졌다.
나는 곁눈질로 놈을 쳐다봤다.
놈은 뭐가 그리 즐거운지 자리에 앉자마자 낄낄댔다.
“푸시이이”
기분 탓인지 출입문열리는 소리도 요란한 게 신경에 거슬렸다.
“툭!”
출입문이 열리자마자 모자를 푹 눌러쓴 남자 하나가 내 어깨를 치며 들어왔다.
‘사람들이 먼저 내리고 그 다음에 타는 것이 순서일 텐데?’
나는 지하철문밖으로 나가면서 내 어깨를 치고 들어간 녀석을 응시했다.
모자를 푹 눌러쓴 그놈은 주변을 두리번거리며 빈자리를 찾고 있었다.
‘고작 빈자리 찾으려고? 수준 낮은 새끼’
불쾌함을 감추기가 힘들었다.
욕을 한 바가지로 들이부어 주고 싶었지만 그럴 수 없다는 게 짜증났다.
생각해보니 오늘은 짜증나는 일투성이다.
거지노인네의 저주와 같은 학생들 그리고 어깨를 툭 치고 가는 미.
비오는 날씨까지.
‘잠깐’
손을 보니 우산이 들려있지 않다.
우산을 깜빡하고 자리에 두고 온 것이었다.
재빨리 뒤를 돌아봤지만 지하철 출입문은 이미 닫혀있었다.
되는 일이 없다.
문득 내 자리에 앉았던 거지노인네의 웃음소리가 떠올랐다.
“낄낄낄”
‘그래서 웃은 거였나?’
우산을 두고 가는 내 멍청한 모습을 보며 신나게 웃었을 놈을 생각하니 저절로 인상이 구겨졌다.
“빌어먹을 놈”
나는 하는 수 없이 우산을 사기위해 지하철 역 안에 있는 편의점으로 향했다.
지하철 바닥을 놈들의 면상이라고 생각하며 짓밟으며 갔다.
‘거지같은 노인네’
‘ 같은 학생들’
‘그냥 미’
그렇게 해서라도 화를 풀고 싶었다.
성큼성큼 놈들의 얼굴을 밟으며 가다보니 금방 편의점에 도착해 있었다.
“우산 하나 주세요.”
나는 지갑을 꺼내며 물었다.
“다 팔렸는데요?”
아르바이트생이 재수 없게 말했다.
“네? 다 팔렸다고요?”
“죄송합니다, 손님. 우산 다 팔렸습니다.”
아르바이트생이 재수 없게 말했다.
“네, 수고하세요.”
“안녕히 가세요.”
아르바이트생이 재수 없게 말했다.
터벅터벅 편의점을 걸어 나왔다.
순간 내 입술이 제멋대로 벌어지며 말했다.
“오지게 재수 없는 날이 구만”
지하철 출구로 향할수록 방정맞은 빗소리가 거세게 들려왔다.
죽어도 비를 맞기는 싫었다.
나는 비를 막을 만한 것을 찾기 위해 주변을 살폈다.
하지만 비를 막을 만한 것들은 아무것도 없었다.
나는 아쉬운 대로 회사 동료에게 전화를 걸었다.
지하철역이랑 회사랑 먼 거리가 아니기에 와줄 거란 생각에서였다.
“여보세요? 어, 박 대리야? 지금 비가 와서 그러는데”
용건만 간단히 말하고 끊고 싶었다.
근데 박 대리가 느닷없이 내 말을 자르며 소리쳤다.
“김 대리, 비오는 게 문제가 아니야! 지금 난리가 났어!!”
뭐라고 말할지 대충 짐작이 갔다.
듣고 싶지 않아서 휴대폰을 꺼버렸다.
회사사정이 어려운건 익히 알고 있었다.
거래업체들이 도미노 쓰러지듯 줄줄이 쓰러졌을 때부터,
우리 회사도 곧 쓰러진 다는 것은 눈치 채고 있었다.
그런 사실을 알고 있음에도 회사에는 계속 나갔다.
부채 때문에 밀려버린 월급 생각에,
그것 하나 때문에 나갔다.
하지만 더 이상은 나가지 않아도 된다.
회사는 나에게 밀린 월급을 줄 능력이 없다.
죽어버렸으니까.
왠지 오늘 아침에 일어날 때부터
나는 회사가 부도날 걸 미리 알고 있었던 것 같다.
참 재수 없는 하루다.
생각해보니 집에서부터 재수가 없었다.
출근하려고 현관에서 구두끈을 묶는데 아내가 말을 걸었다.
“여보, 우리 현관문 말이야, 디지털 도어록으로 바꾸면 안 될까?”
“그게 뭔데?”
“번호로 문 여는 거 있잖아. 비밀번호 해가지고 여는 거, 응?”
아내가 자꾸 말을 걸어서 구두끈이 내가 원하는 모양으로 묶여지지 않았다.
“돈 아깝게 왜 바꾸려고?”
“아니, 요즘 이쪽 주변에 좀도둑들이 설치는데 열쇠로 된 문은 쉽게 따고 들어온데
그렇게 비싼 것도 아닌데, 바꾸자 응?”
“그 돈으로 애 먹일 분유나 사”
아내가 이런 소리를 내뱉을 때면 회사의 사정을 말해주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이럴 줄 알았으면 대출받은 돈으로 월급을 주는 게 아니었다.
나는 아내를 무시하고는 그냥 일어섰다.
여전히 구두끈의 모양이 마음에 들지 않았지만, 더 이상 집에 있고 싶지는 않았다.
“아이, 그러지 말고 바꾸자?”
아내가 내게 바짝 다가오더니 팔에 잡아당겼다.
사실 거기까지는 괜찮았다.
하지만 구두끈을 밟은 건 정말 참을 수가 없었다.
나는 아내를 밀쳐서 쓰러뜨리고는 소리쳤다.
“너 왜 그래, 진짜?!! 남편회사가 언제 부도날지 모르는 마당에 돈 쓸 궁리나 하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의 발걸음이 너무나 무거웠다.
꼭 발에 무거운 족쇄를 달고 걷는 것 같았다.
집근처에 다다랐을 쯤,
속도를 내서 걷다가 빗물에 미끄러져 넘어졌다.
내가 생각해도 험한 꼴을 보이며 넘어졌다.
나는 혹시나 누가 봤을까하고 재빨리 일어났다.
불행히도 슈퍼마켓 아저씨가 내 꼴을 보고 말았다.
아저씨의 주름진 미간을 보니, 웃음을 꾹 참고 있는 게 훤히 보인다.
아마 내가 지나가면 배꼽을 잡고 웃어댈 게 분명하다.
한숨을 내쉬었다.
스스로 내 를 보아하니 가관이다.
머리부터 발끝까지 홀딱 젖어있고, 구두끈은 풀려있다.
그나마 다행인 건 집과 회사가 가깝다는 점이다.
만약 집과 회사가 좀 더 멀었더라면 오늘 이보다 더한 꼴을 여러 번 당했을 것이다.
추적추적 내리는 비를 맞으며 걷다보니 어느덧 집에 도착했다.
‘아휴’
아침에 저지른 일도 있고 해서 들어가기가 내키지 않았다.
그래도 계속 바깥에서 비를 맞을 수는 없었기에
걱정되는 마음으로 초인종을 눌렀다.
“딩동-.”
초인종을 눌렀는데 안에서 반응이 없었다.
나는 두 번 연달아 초인종을 눌렀다.
“딩동- 딩동-.”
초인종소리가 경망스럽다.
나는 다행이라는 생각과 함께 문고리를 잡아 돌렸다.
‘어라? 문이 열려있네’
이상하게도 문이 열려있었다.
참 이상하게도.
“응애! 응애! 으앙!”
문을 열자 집에서 아들 녀석의 울음소리가 크게 들려왔다.
“뭐하는 거야? 남편이 왔는데”
나는 일부러 누워있는 아내를 향해 소리쳤다.
하지만 아내는 나무토막마냥 누워서 미동도 하지 않았다.
나는 슬며시 아내에게 다가가 아내가 숨을 쉬는지 확인했다.
‘다행이다.’
아내는 숨을 쉬지 않았다.
바닥에 머리부터 부딪혀 즉사한 것이었다.
솔직히 그렇게 쓰러져놓고 살아있다면 곤란했다.
‘다행이다.’
행여나 아내가 깨어나 경찰에 신고라도 했다면 오늘 하루가 통째로 재수 없는 날이 될 뻔했다.
죽은 아내 덕분에 재수 없던 오늘 하루를 보상받는 기분마저 들었다.
"똑똑똑"
누군가 문을 거세게 두들겼다.
내 심장도 그에 맞춰 거세게 뛰었다.
문을 잠그지 않았으니까.
“철컥”
순간 문이 열리고 경찰들이 들이닥쳤다.
“꼼짝 마!”
경찰들은 죽은 아내 옆에 멀뚱히 앉아있는 나를 보며 소리쳤다.
‘누가 신고했지?’
분명 나는 아내를 밀쳐 쓰러뜨려 죽여 놓고, 문을 잠그고 나왔다.
목격자 따위 있을 리가 없다.
한 살도 채 안된 아들 녀석이 신고 했을 리는 더더욱 없다.
그렇다면.
‘아! 그러고 보니 문이 열려있었다.’
경찰들이 내게 서서히 다가왔다.
‘좀도둑!!’
머릿속에 갑자기 떠올랐다.
주변에서 열쇠를 따고 집을 털어간다는 좀도둑.
대충 정황을 봤을 때, 좀도둑이 열쇠를 열고 들어왔다가 신고를 한 게 분명하다.
‘망할 좀도둑새끼, 그냥 물건만 훔쳐서 나가면 될 것을 신고는 왜 하고 이야?’
경찰은 내 손목에 차가운 수갑을 채우고는 나를 끌고 갔다.
수갑이 꽉 조여서 손목마디가 아팠다.
‘좀도둑이 네놈이었냐?’
나는 봤다.
현관으로 끌려가면서 봤다.
현관 구석에는 내가 지하철에 두고 내린 우산이 있었다.
‘형씨는 오늘 재수 없는 날이 될 거야’
터벅터벅 현관을 걸어 나왔다.
순간 내 입술이 제멋대로 벌어지며 말했다.
“오지게 재수 없는 날이 구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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