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어릴 적 친구한테서 태어나서 처음 들어보는 일에 대한 메일을 받았어... 러닝머신에서 운동하는 사람 있으면 조언 좀 해줘
작성자: inaaace
나도 이게 얼마나 말도 안 되는 소리로 들릴지 알아.
저번 주 목요일에 고향에 있는 어릴 적 친구한테서 메일을 받았고
그 때 이후로 메일을 두 개 더 받았어.
솔직히 10년 전에 미국으로 이사 온 후로 이 친구랑 관계도 많이 소원해졌어.
가끔씩 “잘 지내냐” 하는 정도로 말이야.
그런데 내가 밑에 복붙할 이메일은 그냥 평범한 안부 메시지 수준을 넘었어, 엄청나게.
이제 그만 지껄이고 내가 받은 메시지를 보여줄게.
원래 모국어로 된 이메일을 영어로 번역하려고 최선을 다 했어.
그리고 진짜로,
내가 그 친구를 이제 그렇게까지 잘 알지 못하지만 말이야.
걘 뜬금없이 나한테 이딴 장난 칠 애가 아냐.
--------------------------------------------------------------------
From: _______@gmail.com
To: _@yahoo.com
Subject: 이거 최대한 빨리 읽어 줘
야, 오랜만이지. 내가 바빴다는 건 굳이 말하지 않을게.
몇 년 동안 우리가 좀 뜸했던 건 너도 나도 알고 있잖아.
그런데 뭐, 괜찮아. 네 삶은 거기 있는 거고, 내 삶은 여기 있는 거니까.
그런데 말이야.
난 지금 니 도움이 필요해.
지금쯤 넌 아마 눈알 굴리면서 내가 돈을 빌려달라고 하거나
새로 나온 아이폰6 좀 보내달라고 할 거라고 생각하겠지.
차라리 그런 거면 좋겠다.
이 봐.
니가 초자연적인 일들을 믿지 않는 거 잘 알아.
너도 내가 너랑 마찬가지란 걸 알거야.
니가 적은 오렌지 여자에 대한 글 읽고 개소리라고 한 것도 나잖아.
그런 일은 현실에서는 일어나지 않는다고.
난 아직도 니가 그 이야길 지어냈다고 생각해. 뭐, 어쨌든.
그런데 뭔가 나한테 일어나고 있어.
문제는 내가 하는 말을 진지하게 받아들이는 사람이 없단 거야.
진짜로, 뭔가가 일어나고 있는데 내가 뭐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어.
니가 읽다 지겨워 죽을 지도 모르지만. 처음부터 적어 볼게.
너 우리가 열 몇 살 때 근육 만드는 거에 대해서 얘기했던 거 기억나?
여자애들이 좋아하는 식스팩 만들고 싶어 했었잖아.
최근에 난 몸을 좀 만들어야겠다고 마침내 결심했어.
이번엔 진짜로 말이야.
9월 1일에 나는 탄수화물, 단 거, 이런 안 좋은 음식을 다 끊었어.
그리고 니 옛날 집 가까이 새로 개장한 헬스장도 다니게 됐어.
미국에 엄청 으리으리한 헬스장이 많다는 건 아는데,
내가 다니게 된 데는 엄청 크고 기구들도 좋아서 돈이 아깝지가 않았어.
거기 다니는 여자애들도 완전 섹시하고.
처음엔 기본적인 리프팅하고 유산소 운동을 하기 시작했어.
매주 몸무게 줄어드는 걸 보니까 더 자극받아서 열심히 하게 되더라고.
심지어는 10km 마라톤까지 신청했어.
그 때부턴 러닝머신을 훨씬 많이 뛰기 시작했지.
그건 그렇고 이 러닝머신들이 진짜 장난이 아니야.
니가 미국의 온갖 최첨단 기술에 익숙해져 있다는 건 알지만
나한테 tv 스크린이 달린 러닝머신은 진짜 신세계였어.
얼마 후에 나는 가상 트랙 달리기 기능을 발견했어.
바다, 숲, 뭐 이런 세팅을 고르고 나면
뛰는 동안 스크린에서 어느 지점을 달리고 있는지 보여주는 그런 거 있잖아.
난 왜인지는 몰라도 처음엔 항상 해변을 골랐어.
그런데 금세 질려 버렸고
어느 날은 한 번 숲 코스를 골랐어.
좀 새로운 분위기로 해보려고 말이야.
코스도 나한테 딱 맞게 10km였어.
그 코스가 진짜 쩔었어. 진짜로.
비디오에선 나무로 둘러싸인 작은 오솔길이 나왔는데
엄청 평화롭고 좋아서 당장에 내 선호도 1위 코스가 됐지.
그런데 어느 날, 그러니까 그 세팅을 사용한 지 이 주 정도 됐을 때
뭔가를 발견했어.
코스 6km 지점쯤을 뛰고 있었는데
길가에 검정 드레스를 입은 늙은 여자가 서 있는 거야.
난 이게 이상하다고 생각했어.
왜냐하면 15일 정도 이 코스를 사용하면서
내가 그 비디오의 세부적인 부분까지 다 기억하고 있다고 생각했거든.
게다가 그 여자는 그냥... 완전 붕 떠 보였어.
이 비디오에서 나오는 사람들은 달리기선수, 자전거선수, 보행자 정도가 전부거든.
그런데 저런 사람을 본 적은 맹세코 한 번도 없었어.
내가 그 여자한테 가까이 다가갈수록
그 여자가 원래 거기 있는 사람이 아니라는 게 확실해졌어.
일단, 그 여자는 카메라를 (아니면 나를, 혹시 모르지)
똑바로 쳐다보고 있었어.
게다가, 나를 쫓아 머리를 조금씩 움직이는 것 외엔 완전정지 상태였어.
내가 그 여자를 스쳐 지나갈 때
그 여자가 검정 드레스 같은 걸로 온몸이 싸여 있는 걸 볼 수 있었어.
심지어 검정색 두건 같은 것도 머리에 쓰고 있었어.
그 여자는 엄청나게 늙어 보였어, 한 70살 정도?
그것 자체도 비디오랑 전혀 안 맞고 이상하지.
이 코스를 촬영하는 카메라는 항상 전방만 찍으니까
내가 그 여자를 본 건 5초 정도가 전부였고
그 후론 화면에서 사라졌어.
당연히 비디오를 뒤로 돌려보고 싶었지.
엄청 이상해 보였으니까.
그렇지만 그렇게 할 방법도 없었고
그 여자 5초 더 보겠다고 6km를 다시 뛸 생각도 당연히 없었어.
그래서 그냥 운동 끝내고 집에 갔고, 까먹어 버렸어.
여기까진 꽤 지루할거야, 그렇지?
다음날 나는 다른 러닝머신에서 뛰었어.
전날 5km 지점에서 그 여자를 봤던 게 확실하니까
이번에도 5, 6km 쯤에 그 여자를 다시 볼 거라고 생각했어.
그런데 6km 표시를 지나도 여자는 나타나지 않았어.
7km, 8km, 9km, 10km도 마찬가지였고.
나도 알아. 그게 다른 러닝머신이었다는 거.
아마 다른 비디오였을지도?
그런데 비디오 다른 부분은 어제랑 똑같았어.
나는 전날 내가 잠깐 맛이 갔었나보다, 생각하고
ㅈ까, 이러고 말았지.
며칠 뒤에 나는 다시 맨 구석에 있는 그 러닝머신을 쓰게 됐어.
그 때 나는 완전히 그 여자에 대해선 까먹고 있었어.
그런데, 시발 그런데,
미친, 지금 쓰면서 몸이 너무 심하게 떨려.
6km 지점에 검은 옷 입은 그 여자가 길가에 서 있는 거야.
발을 헛디딜 뻔 했지만 겨우 정신을 차리고 계속 뛰었어.
나는 그 여자를 자세히 보려고 얼굴을 스크린에 바짝 댔어.
그리고 솔직히, 그 여자가
내 망상이 아니었다는 걸 증명하고 싶었기도 했고.
그 여자는 진짜 거기 있었어.
가만히 서서, 머리는 날 쫓으면서.
가까워지니까 그 여자 표정이 보였어.
그 여자는, 시발 이걸 어떻게 표현하지, 화난 것?처럼 보였어.
그 여자는 나한테 화난 것처럼 보였어.
알아. 엄청 병맛이지?
나도 태어나서 한 번도 이런 경험을 한 적이 없었어.
그 여자를 스쳐 지나가는데 말 그대로 온몸에 소름이 엄청 돋았어.
그리고 그 여자를 스쳐 지나간 후에,
진짜 비현실적인 일이 일어났어.
아무도 이걸 못 믿어. 그렇지만...
에이씨foot, 그냥 말해야겠어.
내가 스쳐 지나가는데
카메라가 뒤로 돌았어.
그러니까, 카메라맨이 그 여자를 한 번 더 보려고 돌린 것처럼.
그 여자는 길 한 가운데 서서 날 보고 있었어.
그게 끝이 아니야.
그 여자가 날 가리키고 있었어.
오른팔은 날 향해 쭉 뻗어 있었고 검지는 날 따라 움직였어.
그러고 나서, 카메라가 다시 앞으로 돌아갔는데,
커다란 픽업트럭이 날 덮치려고 달려오는거야.
난 진짜로 넘어질 뻔 했어.
그런데 트럭 헤드라이트가 카메라 바로 앞까지 온 후에
스크린이 갑자기 까맣게 됐어.
나는 긴급 정지 버튼을 누르고
완전히 겁에 질려서 최대한 빨리 밖으로 나왔어.
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어.
호흡도 가빴고,
무엇보다 엄청 충격 받았지.
그래도 하나만은 명확했어.
내가 이 병신 같은 일을 단순히 상상한 게 아니란 것.
나는 논리적인 것 외엔 어느 것도 믿지 않겠다고 생각하고
헬스장 매니저를 찾아갔어.
(그나저나 얜 Dejo야. 얘 기억나? 학교 뒤편에서 공놀이 같이 했었잖아.)
그리고 왜 러닝머신 비디오를 자꾸 업데이트 하냐고 장난치듯이 물었어.
걘 내가 장난친다고 생각했는지 웃더니 걸어가 버렸어.
난 뭘 어떻게 해야 할지 몰랐어.
그리고 현실적으로 보자면, 별로 할 수 있는 게 없었어.
그냥 잊어버리든가,
계속 그 러닝머신을 쓰면서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지켜보든가.
난 너처럼 호기심이 많고 그렇진 않거든.
그래서 그냥 다른 러닝머신에서 운동하기 시작했어.
그리고 그 다음부턴 모든 게 정상으로 돌아왔어.
아마 그 사건이 가상 트랙을 더 이상 쓰지 않게 된 데 일조한 거 같아.
난 맨 구석에 있는 그 러닝머신을 사용하는 사람들도 관찰해봤어.
그런데 아무도 이상한 반응 따윈 보이지 않더라고.
그래서 아무도 그 여자를 못 봤구나, 라고 생각했지.
그런데 이틀 전에 내가 손님초대권으로 친구(넌 모르는 애)를 한 명 데려 왔었어.
리프팅한 후에 러닝머신에서 땀 한 번 쭉 빼기로 했지.
그런데 마침 운은 또 개같이 좋아서
남은 러닝머신이 구석에 두 개뿐인 거야.
그 중 하나가 그 존나게 소름끼치는 러닝머신이었어.
내 친구가 다른 러닝머신에 훌쩍 올라갔어.
난 러닝머신 바꾸자는 또라이 같은 소리 하기 싫어서
그냥 그 이상한 비디오 나오는 러닝머신에 섰어.
그리고 내가 시작 버튼을 누르자마자
그 숲길 코스가 시작되는 거야!
아무리 취소 버튼을 미친 듯이 눌러도 개 같은 러닝머신이 안 멈춰.
내 친구가 “야, 뭐 해?” 이렇게 물어서
그냥 웃으면서 고개를 저었어.
그리고 그냥 배 째라 생각하고 그 코스를 달리기로 했어.
어쩌면 아무 일이 안 일어날 수도 있잖아
“와, 그거 쩐다. 뭐 가상 트랙 그런 건가?”
내가 1km 지날 때쯤 내 친구가 그렇게 말했어.
난 “어, 이거 꽤... 멋있지.” 라고 중얼거리고.
그런데 내 친구가
“야, 나 저 숲 알아. 저거 Skadarsko Jezero 가는 길이잖아.”
라고 말하는 거야.
“뭐?”
“그래, 나 저기 본 적 있어.
여기서 한 세 시간 거리야.
이 숲을 트랙으로 넣다니 완전 쩐다.
난 이런 비디오들은 다 미국 같은 데서 만든다고 생각했거든.”
내가 걔한테 그 숲에 대해서 더 물어보려고 했는데
화면을 보니 마침 5km 표시를 지나고 있는 거야.
그 때부터 척추까지 소름이 쫙 끼쳤어.
난 “제발, 오늘만은 아니길.” 이라고 생각하면서 뛰었어.
6km. 아무 것도 없음.
7km. 아무 것도 없음.
난 무사했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은 것이 기쁘고 그래서
갑자기 내 실력을 자랑하고 싶어졌어.
그래서 속도를 높였어.
비디오도 같이 빨라졌어.
코스 도착점이 멀찍이 보이기 시작했고
이때쯤 나는 최선을 다해 뛰고 있었어.
그런데, 시발 그런데 말야,
도착점에 도달하기 직전에
내 30미터 정도 앞에
난데없이 검은 옷 입은 그 여자가 길을 건너기 시작하는 거야.
난 엄청난 속도로 그 여자한테 다가가고 있었어.
갑자기 긴급정지 버튼을 누르면 또라이처럼 보이는 상황이었지.
여자는 이제 길 중간에 도착했고
나를 향해서 방향을 틀었어.
난 뭔 일이 일어나든지 그냥 통과해버리자, 라고 생각했어.
그 여자는 그냥 거기 서 있었어.
그런데 뭔가를 들고 있더라고.
여자를 지나치기 바로 전인데다가
여자가 뭘 들고 있는지 알아 볼 수가 없어서
얼굴을 스크린 가까이 들이댔어.
그제야 여자가 그 물건을 들어 올리더라고.
난 그걸 알아 볼 수가 있었어.
난 그걸 언제 어디서든 알아볼 수 있었을 거야.
우리가 07년도에 세르비아에서 있었던 레드핫칠리페퍼스 콘서트 간 거 기억나지?
한 시간 만에 땀에 완전 흠뻑 젖었던 공연 있잖아.
그 때 우리가 샀던 쓸데없이 비싼 공연 투어 티셔츠 알지?
그래, 그거.
나 그거 아직도 갖고 있거든.
스크린 속에서 그 여자가 오른손에 그 셔츠를 들고 있었어.
우연일까?
우연이라고 믿고 싶었어. 진짜로.
그런데 카메라가 그 여자를 스치는 순간
그 셔츠를 좀 더 자세히 봤는데
내 옷이랑 똑같이 셔츠 오른쪽 소매가 없었어!
(없어진 걸 설명하자면 긴 이야기야)
내 말은, 그렇게 심한 우연은 불가능하잖아, 그렇지?
달리기를 마치고 나니
아드레날린이 온 몸에서 솟아나는 기분이었어.
그 후엔 아무렇지 않은 척 친구랑 놀았지만
실제로는 집에 가고 싶어서 죽을 뻔 했어.
집에 도착하자마자, 난 내 방에 뛰어 들어가서
옷장에 있는 서랍이란 서랍은 다 뒤졌어.
그런데 어땠는지 알아?
그 셔츠가 없어진 거야.
난 내가 그걸 갖고 있단 걸 확실히 알아.
한 5일 전에 그걸 입었거든.
이 이야기를 부모님께 했더니
날 막 비웃고는 약 빨았냐면서 그러더라고.
친구 한 두 명 정도한테도 이 얘기를 했는데
전부 내가 장난친다고 생각했어.
그리고, 어제 밤에, 상황이 더 끔찍해졌어.
그러니까 내 인생이 시발 완전히 변해버렸다고.
어제 저녁 먹기 전에 잠깐 담배 피려고
발코니에 서 있었거든.
니가 기억할지 모르겠지만
난 니가 자주 왔었던 그 건물 8층에 아직도 살고 있어.
어쨌든, 내가 거기 서서 거리를 보면서 있는데,
그 거리에 불빛이 얼마나 개같이 희미한지 알지?
그런데 뭔가가 보였어.
어떤 실루엣이 서서 올려다보는 것 같았어.
난 그게 뭔지 몰랐지만
이미 편집증이 생겨서 모든 게 의심스럽게 보였어.
그리고 실제로 뭔가가 정상이 아니었어.
그냥 그런 느낌이 들었어.
남자인지 여자인지 모를 사람이 나를 올려다보고 있었어.
진짜야. 장담할 수 있어.
난 내려가 보기로 결정했어.
그래, 솔직히 인정할게. 진짜 무서웠어.
그렇지만 난 그게 누구인지,
아니면 무엇인지 꼭 알아야 겠다고 생각했어.
언제나처럼 우리 아파트 엘리베이터는 작동을 안 했고
나는 걸어 내려가야 했지.
내가 거리로 나갔을 때, 거긴 아무도 없었어.
그런데... 그런데
근처 나무의 가지에 내 셔츠가 걸려 있는 거야.
레드핫칠리페퍼스 셔츠 말이야.
난 그걸 끄집어 내린 후에
주변을 살펴봤지만 아무도 없었어.
그 여자는 사라지고 없었어.
난 분명 그게 그 여자일 거라고 생각했어.
어떻게 그게 가능할 수가 있지?
내가 하는 말을 믿기 힘들겠지만
아무도 날 믿어주는 사람이 없어서
지금 너한테 말하고 있는 거야.
모르겠어, 뭘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어.
내 생각에... 내 생각에 그 숲길을 직접 가 봐야할 것 같아.
내가 생각할 수 있는 건 그게 전부야.
넌 이걸 대체 어떻게 생각해?
그나저나 책 쓰는 수준으로 메일을 길게 써서 미안해.
하지만 이건 내 인생이 달린 문제야.
이걸 말할 만한 다른 사람을 떠올릴 수가 없었어.
Zeki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