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2년 10월 어느 날
당시 중1이던 난 사고로 아버지를 여의게된다.
사고 당시 난 아버지 바로 옆에 있었으며
말로 표현 할 수 없는 끔직한 장면을 울지도 못하고
멍하니 보고만 있었다.
교통사고로 즉사 하셔서 현장은 정말...
더군다나 불과 3초? 전까지 옆에 서 계시던 아버지.
그렇게 난 14살에 상주가 되었고
모든 장례가 끝날 때까지 눈물이 나오지 않았다.
지금 생각해보면 당시 나에겐 상복보다 정신과 치료가 우선이였던거 같다.
그렇게 넋나간 듯 시키는데로 장례가 끝나고
학교로 돌아갔다.
난 학교 운동부였고 동급생들 사이에선 리드쉽도 있었다.
근 일주일만에 본 친구들은 특별한 위로 없이
그냥 서로서로 조심?히 토닥히는 정도였다.
그리고 1교시 국사시간.
담당 쉰김치년이 들어와 날 보더니
"베충이 왔네~ 아픈데 없어?
"네
"그래, 너네 아빠 어떻게 돌아 가셨어?
"... ...
"사고 났다며? 어떻게 돌아가셨어?
"... ...
"왜 대답을 안하니?
"잘 모르겠는데요
"넌 중1이나 되서 니 아빠가
어떻게 돌아가셨는지도 모르니?
"... ...
그리곤 수업이 시작되었다.
난 사고 당시부터 장례가 끝날 때까지 눈물도 안 났는데 개씨발년의 저 말때문에 수업중에 대성통곡했다.
그렇게 울면서 교실을 나와 집에 갔다.
그일 후 또 일주일 정도 학교를 가지 않았고
어머니도 가라고 말씀하시지 않으셨다.
다시 학교를 갔을 땐 그 샹년은 날 제대로 보지 않았고 더 이상 그 얘기를 꺼내는 선생도 없었다.
23년이 지난 지금도
그 씨발년을 갈아 죽여서 닭사료로 뿌리고 싶다.
그년 말고도 정말 기가차는 개같은 선생썰 많은데
아까 일베간 김치년교사 보니깐
드러운 기억들이 수없이 생각나네ㅅㅂ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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